스티브 잡스 플레이보이 인터뷰: Steve Jobs PlayBoy Interview
컴퓨터, 실수, 그리고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인 청년 기업가의 솔직한 대화
PLAYBOY, 1985년 2월호
1985년 2월자 플레이보이 잡지에 실린 전설적인 인터뷰, “PLAYBOY INTERVIEW: STEVE JOBS”의 번역입니다. 인터뷰는 잡스가 29세에 맥킨토시를 출시한 직후, 애플의 공동 창업자로서 세상의 주목을 받고 있을 때 진행된 심층 대화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결국 세상을 바꾼다.” 1985년, 이 인터뷰를 통해 스티브 잡스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고작 스물아홉. 하지만 이미 그는 애플을 창업하고 Apple II를 히트시킨 뒤, 매킨토시(Macintosh)라는 완전히 새로운 컴퓨터를 세상에 내놓은 청년 CEO였습니다.
전설의 시작은 ‘차고’에서 비롯됐고,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과 철학에서 완성됐다. 그리고 그 정신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수많은 창업가, 디자이너, 개발자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장문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철학, 기술에 대한 관점, 그리고 ‘애플이라는 문화’를 어떻게 만들어왔는지 주제별로 정리하고자 한다. 지금부터 소개할 그의 목소리는, 단지 과거의 기록이 아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건네는 메시지’로 받아 들여졌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스티브 잡스의 29살짜리 천재성이 담긴 생각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주요 내용 요약 및 번역 구성
- 인터뷰어: 데이비드 셰프 (David Sheff)
- 시점: 1984년 말
- 장소: 캘리포니아 쿠퍼티노, 소노마 헬스 스파 등지에서 진행
- 내용: 약 20,000단어 분량의 인터뷰
목차
- 스티브 잡스의 어린 시절과 교육 배경
- 애플의 탄생: 워즈니악과의 첫 만남
- 애플 I에서 애플 II까지
- 매킨토시 개발 비하인드
- IBM과의 경쟁과 철학
- 교육, 철학, 동양사상에 대한 고찰
- 재산, 자선, 그리고 미래에 대한 고민
- 예측: 컴퓨터가 세상을 바꾼다

1. 스티브 잡스의 어린 시절과 교육
PLAYBOY: 리드 칼리지를 다니기 전까지 성장 과정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 컴퓨터에 흥미를 갖게 된 배경은 무엇이었나요?
JOBS: 부모님은 제 관심사를 항상 격려해 주셨어요. 아버지는 기계공이셨고, 손재주가 엄청나셨죠. 뭐든지 고치고 작동하게 만들 줄 아셨고, 기계장치를 분해했다가 다시 조립하는 데도 천재적이셨어요. 어쩌면 그게 제게 기술에 대한 첫 인상을 심어준 것 같아요.
저는 점점 전자기기 쪽으로 관심이 기울었고, 아버지는 분해하고 조립할 수 있는 장비를 많이 구해다 주셨어요. 우리가 팔로알토로 이사하게 된 건, 아버지가 그쪽으로 발령을 받아서였어요. 제가 다섯 살 때였죠. 실리콘밸리에 살게 된 계기가 그렇게 시작됐어요.

PLAYBOY: 입양된 사실은 당신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JOBS: 글쎄요, 그건 정확히는 알 수 없는 부분이에요. 입양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호기심이 있죠. ‘내 성격이나 성향은 어디에서 온 걸까?’라는 의문이요. 하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환경주의자라고 생각해요. 어떤 가치관을 갖게 되는지, 인생을 보는 관점은 자라온 환경과 경험에서 온다고 믿거든요. 물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고, 그런 점에서 호기심이 생기긴 해요.
PLAYBOY: 생물학적 부모를 찾아보려 했던 적이 있나요?
JOBS: 그 부분은 제가 공개하고 싶지 않은 영역입니다.
PLAYBOY: 그럼 본격적으로 실리콘밸리에 살며 기술에 접근하게 된 계기를 말씀해 주세요. 어떤 환경이었나요?
JOBS: 전형적인 미국식 교외였죠. 블록마다 아이들이 많았고요. 어머니는 저에게 학교에 가기도 전에 읽는 법을 가르쳐 주셨어요. 그래서 학교 수업은 많이 지루했죠. 말썽꾸러기였고, 3학년 땐 거의 교실을 뒤집어놓다시피 했어요. 교실에 뱀을 풀어놓거나 폭죽을 터뜨리는 일도 있었고요.
그런데 4학년에 이르러서 인생의 ‘성자’ 같은 선생님을 만났어요. 이름은 이모진 힐(Imogene Hill)이었고, 영재반을 맡으셨죠. 한 달쯤 지나자 제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시고, 제 안에 있는 ‘배움에 대한 열정’을 꺼내주셨어요. 그해 저는 학교에서 그 어느 해보다 많은 걸 배웠어요. 학교 측에서는 저를 중학교로 월반시키려 했지만, 부모님은 현명하게 거절하셨죠.
PLAYBOY: 실리콘밸리가 오늘날처럼 발전하게 된 배경은 뭐라고 보시나요?
JOBS: 지리적으로 스탠퍼드와 버클리라는 두 개의 위대한 대학 사이에 위치해 있다는 게 결정적이었죠. 두 학교 모두 전미에서 우수한 인재들을 끌어들이고, 그 학생들 중 많은 이들이 이 지역에 정착했어요. 지속적으로 새로운 인재들이 유입되는 환경이죠.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스탠퍼드 졸업생이던 빌 휴렛과 데이브 패커드는 혁신적인 전자회사인 휴렛팩커드(HP)를 설립했죠. 또, 트랜지스터가 1948년 벨 연구소에서 발명되었고, 공동 발명자 중 한 명인 윌리엄 쇼클리는 고향인 팔로알토로 돌아와 작은 회사를 세웠어요. 그가 데려온 뛰어난 과학자들과 엔지니어들이 하나둘씩 독립해서 회사를 차리며 ‘전자 기업의 씨앗’이 퍼져나간 거예요. 민들레 씨앗처럼요.
PLAYBOY: 처음으로 컴퓨터를 접하게 된 건 어떤 계기였죠?
JOBS: 동네에 살던 래리 랭이라는 이웃이 있었는데, HP에서 일하시던 엔지니어셨어요. 그는 저에게 많은 걸 가르쳐줬어요. 제가 처음 컴퓨터를 본 것도 HP였어요. 당시 HP는 매주 화요일마다 아이들 10명 정도를 불러 강연을 해주고 컴퓨터를 만지게 해줬어요. 아마 12살쯤이었죠. 그때가 아직도 기억나요. 새로 나온 데스크톱 컴퓨터를 보여주고 직접 만져보게 했는데, 전 정말 갖고 싶었어요.
PLAYBOY: 단순한 흥미였던 건가요, 아니면 가능성을 느낀 건가요?
JOBS: 그렇게 거창하진 않았어요. 그냥 정말 멋지다고 느꼈어요. 직접 만져보고 싶고, 가지고 놀고 싶었던 거죠.
PLAYBOY: HP에 어떻게 입사하게 됐나요?
JOBS: 12살쯤, 무언가 만들고 싶었는데 부품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그냥 전화번호부에서 빌 휴렛 이름을 찾았고, 그에게 전화를 걸었죠. 정말 그가 전화를 받았고, 무척 친절했어요. 저와 20분 정도 통화했는데, 제 요청을 들어줬고, 그 여름에 HP에서 일할 수 있게 해줬죠. 제 역할은 주파수 카운터를 조립하는 일이었는데, ‘조립’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수준이에요. 나사 조이기였으니까요. 그래도 전 천국에 있는 기분이었어요.
PLAYBOY: 그 당시 스티브 워즈니악은 어떻게 만났나요?
JOBS: 제가 13살 때 친구 집 차고에서 워즈를 처음 만났어요. 그는 18살쯤이었고, 제가 아는 사람 중 전자공학에 대해 저보다 많이 아는 첫 번째 인물이었죠. 우리는 공통 관심사 덕분에 금세 친해졌어요. 장난도 많이 쳤고요.
PLAYBOY: 예를 들면요?
JOBS: 예를 들어, 커다란 손가락 욕 모양의 깃발을 만들어 졸업식장에서 펼치려 한 적도 있고요. 워즈가 시한폭탄처럼 보이는 장난감을 만들어 구내식당에 가져가기도 했죠. 또 함께 ‘블루박스’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PLAYBOY: 불법 전화 장비 말이죠?
JOBS: 맞아요. 유명한 일화로, 워즈가 바티칸에 전화를 걸어 자신을 헨리 키신저라고 소개한 적도 있어요. 교황을 깨울 뻔했죠.
PLAYBOY: 그런 짓 때문에 곤란해진 적도 있었나요?
JOBS: 학교에서 몇 번 쫓겨났죠.
PLAYBOY: 컴퓨터 괴짜, 흔히 말하는 ‘너드’였다고 생각하세요?
JOBS: 전 어느 한 세계에만 몰두하지 않았어요. 세상엔 할 게 너무 많았죠. 고등학교 2~3학년 사이 처음 마리화나를 했고, 셰익스피어나 딜런 토머스 등 고전 문학에 빠졌어요. 『모비 딕』을 읽고는 창작 수업을 듣기도 했고요. 고등학교 말엔 스탠퍼드에서 수업을 듣기도 했죠.

2. Apple의 탄생 – 워즈니악과의 첫 만남부터 Apple I 까지
PLAYBOY: 그 당시, 워즈니악은 어떤 성격이었나요? 컴퓨터에 사로잡혀 있었나요?
JOBS: (웃음) 그렇죠. 하지만 컴퓨터에만 빠져 있던 건 아니었어요. 워즈는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세계에 살고 있었어요. 아무도 그의 관심사를 공유하지 않았고, 그는 시대를 앞서가 있었어요. 그래서 꽤 외로웠을 겁니다. 그는 외부의 기대보다는 내면에서 끌어오르는 흥미와 시야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잘 버틴 거죠.
우린 대부분의 면에서는 달랐지만, 어떤 점에서는 닮았고 그 닮은 부분에서 굉장히 가까웠어요. 마치 각자 궤도를 도는 두 개의 행성 같달까요. 가끔 궤도가 교차할 때, 우리는 뭔가를 함께 해냈죠. 그게 단지 컴퓨터에 대한 것만은 아니었어요. 우리는 밥 딜런의 시적인 노랫말을 무척 좋아했고, 그의 가사에 대해 깊이 생각하곤 했어요. 그런 것들을 많이 나눴죠. 캘리포니아라는 곳 자체가 실험과 가능성에 열려 있었어요.
그때는 L.S.D.도 스탠퍼드에서 갓 만들어져 막 유통되던 시기였고, 여자친구와 해변에서 자기도 했고, 뭐든지 열려 있었죠. 정신세계도 그랬어요. 동양 철학에 빠져 있었고요. 그 무렵 리드 칼리지에 갔을 때는 티모시 리어리, 리처드 앨퍼트, 게리 스나이더 같은 사람들이 계속 찾아와 강연하고 갔어요. 그 시절엔 『Be Here Now』, 『작은 지구를 위한 식단(Diet for a Small Planet)』 같은 책들이 대학생들 사이에서 필독서였죠. 요즘 캠퍼스에선 그런 책들 보기 힘들지만요.
PLAYBOY: 그런 문화적, 철학적 분위기가 지금의 일에 어떤 영향을 줬다고 생각하시나요?
JOBS: 아주 큰 영향을 줬죠. 60년대가 지나갔을 때, 많은 이들이 자신이 이루고자 했던 것을 결국 이루지 못했고, 동시에 훈련된 자기 규율도 잃어버렸기 때문에 돌아올 수단도 잃었어요. 제 친구들 중 많은 이들이 60년대의 이상주의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지만, 동시에 어느 정도 현실 감각도 갖추고 있죠. 결국 45살에 자연식품점 계산대에서 일하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그게 꿈이 아니라면 말이죠.
PLAYBOY: 리드를 중퇴하고 다시 실리콘밸리로 돌아왔을 때, 아타리에서 “즐기면서 돈을 벌자”는 광고를 보고 입사했다고 들었습니다.
JOBS: 맞아요. 여행을 가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어요. 그래서 돈을 벌기로 했죠. 신문을 보다 그런 광고를 발견했고, 전화를 걸었어요. 다음 날 바로 연락이 왔고, 채용됐어요. 아타리에서의 첫 직장이었죠.
PLAYBOY: 당시 아타리는 어떤 회사였나요?
JOBS: 직원이 40명 정도밖에 없는 작은 회사였어요. ‘퐁(Pong)’과 다른 두 게임을 만든 상태였고, 저는 어떤 사람이 농구 게임을 만드는 걸 돕는 일을 맡았는데, 그 프로젝트는 완전 망했어요. 당시엔 인기 있는 야외 스포츠를 모사한 게임을 만드는 게 유행이었어요. 퐁이 성공했으니까요.
PLAYBOY: 그래도 아타리에서 일한 목적은 여행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죠?
JOBS: 맞아요. 아타리가 유럽으로 수출한 게임들 중에 기술 결함이 있는 것들이 있었는데, 그걸 제가 고쳤어요. 그런데 직접 가서 고쳐야 했죠. 그래서 제가 유럽으로 가겠다고 자원했어요. 휴직 요청을 했고, 허락받았어요. 그렇게 스위스를 거쳐 뉴델리까지 가게 됐고, 인도에서 시간을 보냈죠.
PLAYBOY: 그리고 머리를 삭발했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죠.
JOBS: 그건 좀 다르게 전해졌어요. 히말라야에서 걷다가 우연히 종교 축제를 마주쳤고, 그곳의 ‘바바’라는 성인이 있었어요. 전 그냥 배고파서 냄새를 따라 갔을 뿐이었는데, 그 바바가 절 보더니 웃기 시작했어요. 그러더니 저를 데리고 산길을 오르더니, 정상의 우물에서 제 머리를 깎기 시작했죠. 아직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PLAYBOY: 돌아온 후엔 다시 아타리에서 일하게 되었나요?
JOBS: 네. 다시 돌아오라는 연락이 왔고, 처음엔 꺼렸지만 컨설턴트로 일하게 됐어요. 그 무렵 워즈니악과 계속 어울렸고, 그는 홈브루 컴퓨터 클럽에 열심히 다녔어요. 저는 그다지 재미있진 않았지만, 가끔 따라가곤 했죠.
PLAYBOY: 컴퓨터 클럽에선 어떤 분위기였나요?
JOBS: 클럽은 ‘알테어’라는 컴퓨터 키트를 중심으로 형성된 모임이었어요. 우리가 컴퓨터를 실제로 소유할 수 있게 된 건 처음이었죠. 고등학생 시절까지만 해도 우리는 메인프레임 컴퓨터에 접근할 수 없었고, 큰 회사에서 호의적으로 접근해야만 했어요. 그런데 이젠 돈을 내면 살 수 있게 된 거죠. 1975년쯤 나온 이 키트는 가격도 400달러 미만이었어요.
PLAYBOY: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는 부담되는 가격이었겠네요.
JOBS: 그렇죠. 그래서 사람들은 공동 구매 형식으로 모이고, 클럽이 형성된 거예요. 그 안에서 함께 배우고 공유하는 분위기가 생겨났죠.
PLAYBOY: 그렇게 직접 만든 컴퓨터로는 무엇을 했나요?
JOBS: 초기 키트들에는 그래픽도 없었고, 알파뉴메릭 문자만 사용했죠. 아주 단순한 프로그래밍이 재미있었어요. 처음엔 키보드조차 없이 스위치를 눌러서 문자를 입력해야 했고요.
PLAYBOY: 그럼 ‘애플 I’은 그런 키트보다 더 나은 걸 만들자는 생각에서 시작된 건가요?
JOBS: 사실 처음엔 단지 재미로 시작한 거였어요. 저는 아타리에서 야간 근무를 했고, 워즈니악은 그걸 틈타 ‘그란트랙’이라는 게임을 밤새 했어요. 게임 중독자였죠. 그러다가 워즈가 모니터와 키보드를 연결한 단말기를 만들게 됐고, 나중엔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구입해 붙이더니 결국 ‘애플 I’이 됐어요.
우리는 직접 회로 기판을 설계했어요. 아주 기본적인 형태였지만요.
PLAYBOY: 본격적인 제품으로 발전한 계기는요?
JOBS: 제 폭스바겐 버스와 워즈의 HP 계산기를 팔아서 1,300달러를 마련했어요. 그러던 중, 한 컴퓨터 가게 주인이 우리에게 “만들기만 하면 팔아주겠다”고 말했죠. 그때 처음으로 이걸 ‘상품’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PLAYBOY: 워즈니악과의 협업은 어땠나요?
JOBS: 대부분은 워즈가 설계했어요. 저는 메모리 부분과 제품화하는 과정에서 기여했죠. 워즈는 훌륭한 엔지니어이지만, 제품화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그건 제가 맡았죠.
PLAYBOY: 애플 I은 결국 취미용 제품이었죠?
JOBS: 맞아요. 총 150대 정도밖에 팔지 못했어요. 하지만 우리에겐 큰 경험이었죠. 약 95,000달러 정도의 수익이 났고, 이게 단순한 취미 이상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애플 I은 말 그대로 회로기판에 불과했어요. 케이스도 없고, 전원 공급장치도 없고, 키보드도 따로 사야 했어요. 그저 ‘회로기판’이었을 뿐이죠.
3. Apple II와 본격적인 컴퓨터 산업의 탄생
PLAYBOY: 애플 I에서 애플 II로 넘어가는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그건 단지 취미가 아닌, 실제로 컴퓨터 혁명을 불러온 제품이었죠.
JOBS: 그건 저와 워즈뿐만 아니라, 우리가 모아들인 다른 사람들의 힘이었어요. 워즈니악은 여전히 애플 II의 핵심 로직을 담당했는데, 그건 분명히 아주 중요한 부분이었죠. 하지만 전원 공급장치나 케이스 디자인 같은 다른 핵심 요소들도 있었어요.
애플 II에서의 진정한 도약은 바로 이게 완성된 ‘제품’이었다는 점이에요. 이건 조립 키트가 아니었어요. 처음으로 소비자들이 그냥 구입해서 곧바로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였죠. 완제품이었고, 자체 케이스와 키보드를 갖추고 있었어요. 앉자마자 사용할 수 있었죠. 그게 바로 애플 II의 돌파구였어요. ‘이건 진짜 제품이다’라는 느낌을 준 거죠.
PLAYBOY: 초창기 시장은 여전히 취미가들이었나요?
JOBS: 애플 II의 핵심은 바로 하드웨어 취미가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취미가도 사용할 수 있었다는 점이에요. 우리가 깨달은 중요한 포인트는 이거예요. 우리처럼 컴퓨터를 가지고 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정말 많다는 것. 하지만 전자회로를 땜질하고 조립할 줄 아는 사람은 그보다 훨씬 적다는 거죠. 애플 II는 그런 차이를 짚고 나온 제품이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해엔 3,000~4,000대 정도밖에 팔리지 않았어요.
PLAYBOY: 하지만 몇몇 젊은이들이 차고에서 만든 제품 치고는 꽤 많이 팔린 거잖아요?
JOBS: 우리 입장에선 엄청난 일이었죠! 1976년, 우리 차고에서 사업을 하던 해엔 매출이 약 20만 달러 정도였어요. 1977년엔 700만 달러였고요. 그건 완전히 폭발적인 성장세였죠! 1978년에는 1,700만 달러, 1979년에는 4,700만 달러, 그때부터 진짜 실감하게 됐어요.
‘이건 완전히 날아오르고 있구나.’ 1980년엔 1억 1,700만 달러, 1981년엔 3억 3,500만 달러, 1982년엔 5억 8,300만 달러, 1983년엔 약 9억 8,500만 달러 정도였던 걸로 기억해요. 그리고 우리가 인터뷰를 하던 해인 1984년엔 매출이 15억 달러에 이를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죠.
PLAYBOY: 그 숫자들을 정확하게 기억하시네요.
JOBS: 그건 일종의 이정표죠. 물론 숫자도 의미가 있지만, 진짜 멋졌던 건 1979년쯤부터 교실에 들어가면 애플 컴퓨터가 15대씩 설치돼 있고, 아이들이 그것을 활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점이에요. 그게 진짜 인생의 이정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PLAYBOY: 그렇게 해서 결국 매킨토시의 전 단계로까지 발전해 온 거군요.
JOBS: 맞아요. 하지만 그 이야기는 조금 더 나중에 다루도록 하죠. 우리는 애플 II를 만들면서 “우리는 이제 진짜 세상을 바꾸는 걸 시작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4. 매킨토시 개발과 내부 갈등 – Lisa, Apple III, 그리고 Mac의 시작
PLAYBOY: Apple II 이후, 애플 III와 리사(Lisa)를 발표했지만 시장에선 별 반응을 얻지 못했죠. 그 실패 원인은 무엇이었나요?
JOBS: 일단 리사는 너무 비쌌어요. 약 1만 달러였거든요. 우리는 포춘 500대 기업 같은 대기업에 판매하려는 전략을 세웠어요. 그런데 우리 뿌리는 어디까지나 ‘사람들’이었죠, 기업이 아니라요. 게다가 출시도 늦었고, 소프트웨어 완성도도 기대만큼 안 나왔어요. 그 사이 IBM은 엄청난 속도로 치고 올라왔고, 우린 반년이나 뒤처졌죠. 게다가 결정적인 전략적 실수도 했어요.
우리는 리사를 오직 약 150곳의 리셀러를 통해서만 판매하겠다고 결정했죠.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바보 같은 전략이었어요.
또 하나는, 마케팅과 경영의 ‘전문가’들을 채용했다는 점이에요. 그 당시로선 나쁘지 않은 결정처럼 보였죠. 하지만 이 업계는 너무 새로운 시장이었기 때문에, 그 전문가들이 알고 있던 것들이 오히려 발목을 잡는 일이 많았어요.
PLAYBOY: 그것도 결국은 당신이 아직 경영 경험이 부족하다고 느껴서 내린 결정이었나요?
JOBS: 당시 우리는 겨우 23~25살이었고, 아무 경험도 없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거대한 사업을 이끌어야 했으니, ‘경험 있는 전문가’를 채용하는 건 자연스러운 선택처럼 느껴졌죠.
PLAYBOY: 애플의 결정들 좋았든 나빴든 그 책임은 대부분 당신에게 있었나요?
JOBS: 저희는 한 사람이 전부를 결정하지 않도록 했어요. 당시 회사는 마이크 스캇(Mike Scott), 마이크 마큘라(Mike Markkula), 그리고 저 이렇게 셋이서 이끌었죠. 지금은 존 스컬리와 제가 함께 경영하고 있고요. 초기엔 경험 많은 분들의 조언에 제 의견을 양보하는 경우도 많았죠. 어떤 경우엔 그게 맞았고, 또 어떤 중요한 경우엔… 제 의견을 밀고 나갔으면 더 좋았을 수도 있어요.
PLAYBOY: Lisa 팀을 맡고 싶어 했지만 마큘라와 스캇이 반대했죠?
JOBS: 네. 전체 개념을 세우고 핵심 인재를 모으고, 기술 방향도 잡아놓은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스캇은 제가 그 프로젝트를 이끌기엔 경험이 부족하다고 판단했죠. 굉장히 상처받았어요. 그리고 Lisa 팀엔 원래 우리가 생각했던 비전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채용됐어요.
휴렛팩커드 출신의 경영자적 마인드, 대기업을 위한 제품을 만들자는 쪽과 소수지만 원래의 비전을 지키려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 있었죠. 그래서 저는 ‘그럼 나 혼자 다른 팀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말하자면, 다시 차고로 돌아간 거죠. 그게 매킨토시 팀의 시작이에요.
PLAYBOY: 스티브 잡스가 만든 애플이었는데도, 그 안에서 “너는 안돼”라는 말을 들었을 땐 화나지 않았나요?
JOBS: 자식이 나에게 “꺼져”라고 해도 그 자식을 미워할 수는 없잖아요. 기분이 안 좋고, 답답하고, 실망스러울 수는 있어도 미워하지는 않죠. 그래서 저는 제 생각에 정말 최고의 사람들을 데려왔어요.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정말 위험했을 거예요. 그리고 그 사람들이 바로 매킨토시를 만든 사람들이죠. (어깨 으쓱하며) 결과를 보세요. 바로 맥입니다.
PLAYBOY: 하지만 Lisa도 출시 전엔 지금의 맥처럼 기대를 많이 받았었죠. 이번에도 똑같은 기대를 걸고 있는데, 결과는 알 수 없는 것 아닌가요?
JOBS: 맞아요. Lisa는 과도한 기대 속에 출시됐고, 실패했죠. 우리가 가장 힘들었던 건, 맥이 곧 출시된다는 걸 우리가 알고 있었기 때문에 Lisa에 대한 비판에 대꾸할 수 없었다는 거예요. 맥은 Lisa의 모든 단점을 극복하고 있었거든요. 게다가 다시 우리 본래의 뿌리, ‘사람들을 위한 컴퓨터’를 만들고 있었고요. 우리는 그야말로 ‘미친 듯이 멋진 컴퓨터’를 만들고 있었어요.

5. Macintosh 철학과 디자인 – 왜 우리는 이걸 만들었는가
PLAYBOY: 그렇게 미친 듯이 멋진 컴퓨터를 만든다는 건, 결국 ‘미친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말인가요?
JOBS: 사실 정말 멋진 제품을 만든다는 건, 그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 달려 있어요. 새로운 것을 배우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수용하고, 낡은 것을 과감히 버릴 줄 아는 과정이죠. 그래서 맥을 만든 사람들은… 음, 어느 정도 ‘한쪽 끝에 서 있는’ 사람들이긴 했어요.
PLAYBOY: 정말 멋진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사람’과 그걸 ‘실현해내는 사람’의 차이는 뭘까요?
JOBS: 예를 들어 IBM을 봅시다. 왜 맥 개발팀은 매킨토시를 만들었고, IBM은 PC을 만들었을까요? 우리는 맥이 수백만 대 팔릴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제품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 만들진 않았어요.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만들었죠. 우리가 이 제품이 ‘최고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사람이었어요. 시장조사를 하지 않았고, 특정한 인구 집단을 겨냥하지도 않았어요.
우리가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컴퓨터를 만들고 싶었던 거예요. 그게 전부예요. 멋진 서랍장을 만드는 목수라면, 그 뒷면이 벽 쪽으로 가려지더라도 거기에 값싼 합판을 쓰지 않을 거예요. 그걸 아는 건 자기 자신이니까요. 잠을 잘 자기 위해서라도, 뒷면도 고급 나무로 만들죠.
디자인은 결국, 그런 ‘내면의 기준’에서 나오는 거예요. 맥도 그랬어요. 외부뿐 아니라 내부까지, 보이지 않는 곳까지 최고로 만들었어요.
PLAYBOY: 그 말은 PCjr을 만든 사람들은 그런 ‘자부심’이 없었다는 말인가요?
JOBS: 만약 그들이 그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런 제품은 만들지 않았겠죠. 그 제품은 시장조사에 의해 설계된 제품이에요.
특정 시장, 특정 고객층, 특정 소비자 유형을 겨냥해서 만든 거죠. “우리가 이런 제품을 만들면 사람들이 사겠지. 그리고 돈도 많이 벌겠지.” 그런 생각이 바탕이 된 겁니다. 그건 완전히 다른 동기예요. 맥 개발팀은 그저 ‘인류 역사상 가장 멋진 컴퓨터’를 만들고 싶었을 뿐이에요.
PLAYBOY: 왜 컴퓨터 산업은 이렇게 젊은 사람들이 장악하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애플 직원 평균 연령이 29세라고 들었습니다.
JOBS: 새로운, 혁신적인 무언가가 등장할 때는 항상 젊은 사람들이 중심에 있었죠.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굳어져요. 우리 뇌는 일종의 전기화학적 컴퓨터예요. 생각은 일종의 패턴, 일종의 화학적 회로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 회로에 갇혀 버리죠. 마치 레코드판의 홈처럼요. 자신만의 관점, 자신만의 질문 방식에 갇혀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30대, 40대에 정말 놀라운 예술을 하는 사람은 드물죠. 물론, 영원히 호기심 많은 ‘아이 같은 사람’도 존재하지만, 정말 드물어요.
PLAYBOY: 그런 얘기를 들으면 40대 독자들이 별로 안 좋아할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애플이라는 기업은 운영 방식에서도 특별한 철학이 있나요?
JOBS: 네. 컴퓨터라는 제품 외에도, 애플이 사회에 미치는 또 하나의 영향력이 있다고 믿어요. 우리는 ‘미래형 포춘 500 기업’의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를 이끌어갈 새로운 기업 모델이요. 10~15년 전엔 사람들에게 “미국에서 가장 흥미로운 기업 다섯 곳을 꼽으라”고 하면 폴라로이드나 제록스 같은 회사가 리스트에 올랐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누구도 그 회사를 리스트에 올리지 않죠. 왜일까요? 기업이 수십억 달러 규모로 커지면서, 비전은 사라지고, 중간 관리자 층이 두꺼워지죠. 그러면 제품에 대한 열정과 감각은 상층부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창조적인 사람들 진짜 열정을 지닌 사람들은 자기가 옳다고 믿는 일을 하기 위해 5단계의 보고 절차를 거쳐야 해요. 그들은 결국 그 조직을 떠납니다. 그럼 남는 건 ‘평범한 사람들’뿐이죠. 전 애플이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더 잘 알아요. 애플은 ‘엘리스 아일랜드’ 같은 기업이에요. 다른 회사에서 밀려나온 이민자들, 즉 ‘문제아들’이 모인 곳이죠.
에드윈 랜드 박사를 예로 들어볼게요. 그는 폴라로이드의 창립자였고, 하버드를 중퇴했으며, 당대 최고의 발명가 중 한 명이었어요.
과학, 예술, 비즈니스의 교차점을 이해하고 회사를 그렇게 만들었죠. 그런데 결국, 랜드 박사는 자기 회사에서 쫓겨났어요.
전 그게 정말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해요. 그런 천재를 밀어낸 거죠. 그는 이후 순수 과학자로 돌아가 ‘색채 시각’의 비밀을 풀기 위한 연구에 전념했어요. 정말로 국가적 보물 같은 사람이었어요. 왜 그런 사람들이 사회의 롤모델이 되지 못할까요? 운동선수나 우주비행사가 아니라, 바로 그런 사람이 진짜 롤모델이어야 해요.
6. IBM과의 전면전 – 컴퓨터의 미래와 애플의 운명
PLAYBOY: 당신은 매킨토시가 비즈니스 시장에서도 IBM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죠?
JOBS: 맞아요. 비즈니스 시장은 여러 부문으로 나눌 수 있어요. IBM은 주로 포춘 500대 기업처럼 대형 기업을 타깃으로 하죠. 그런데 저는 ‘포춘 5백만 기업’ 또는 ‘포춘 1,400만 기업’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해요. 미국에는 약 1,400만 개의 중소기업이 있고, 이들 모두가 컴퓨터화되어야 할 대상이에요. 우리는 1985년에 이 기업들에게 정말 의미 있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어요.
PLAYBOY: 구체적으로 어떻게요?
JOBS: 우리는 이들을 단지 기업이 아닌 ‘사람들의 집합체’로 보고 있어요. 사람들이 일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싶어요. 단지 문서를 더 빨리 만들고, 숫자를 더 빨리 계산하는 수준이 아니라, 사람들끼리 의사소통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고 싶어요. 예를 들어, 예전엔 5쪽짜리 메모를 쓰던 게, 이젠 그림 하나로 핵심 개념을 전달하면서 1쪽으로 줄어들고 있어요.
종이는 줄고, 커뮤니케이션의 질은 높아지고 있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재미’ 있어요. 사람들은 직장에 오면 갑자기 따분하고 형식적인 인간이 돼야 한다는 신화를 믿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우리는 비즈니스 세계에도 ‘인문학적 정신’을 불어넣고 싶어요. 그게 가능하다면 아주 의미 있는 기여가 될 거예요.
PLAYBOY: 하지만 IBM이라는 이름 자체가 곧 ‘안정성과 신뢰’를 상징하잖아요. AT&T도 그런 면에서는 당신보다 유리하고요. 기업 고객 눈엔 애플은 아직 어리고, 검증되지 않은 회사 아닌가요?
JOBS: 그래서 매킨토시가 기업 시장을 공략하는 핵심이 되어야 해요. IBM은 메인프레임 중심으로, 위에서 아래로 접근하죠. 하지만 우리는 반대예요. ‘풀뿌리’ 접근 방식, 즉 작은 팀 단위로 접근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네트워킹의 경우, IBM은 회사 전체를 한 번에 연결하려 하지만, 우리는 3명, 5명짜리 소규모 워크그룹부터 시작해요.
PLAYBOY: 어떤 전문가들은 이렇게 말하죠. “이 산업이 진정으로 소비자에게 유익해지려면, 하나의 표준이 필요하다.”
JOBS: 그건 정말 잘못된 생각이에요. 1920년대 자동차 산업에 하나의 표준이 필요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아요. 만약 그랬다면, 오토매틱 기어, 파워 스티어링, 독립 서스펜션 같은 혁신은 나오지 않았겠죠. 우리는 기술을 ‘고정’시키고 싶지 않아요. 매킨토시는 혁신이에요. 기술적으로 봤을 때, IBM보다 훨씬 뛰어나요. 시장엔 IBM 외의 대안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PLAYBOY: 매킨토시가 IBM과 호환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인가요? 어떤 비평가는 “잡스는 그냥 IBM에 ‘엿 먹어라’고 한 거다”라고 하던데요.
JOBS: 아니에요. 그건 단순한 반항심이 아니에요. 우리가 호환을 포기한 이유는 간단해요. 우리가 만든 기술이 ‘훨씬 더 뛰어났기 때문’이에요. IBM에 맞추다 보면 그런 기술을 구현할 수 없었어요. 그리고 IBM에 종속되면, 언젠가 우산을 거둬들일 게 뻔했어요. 결국 IBM은 호환 제품을 만드는 회사들을 박살낼 거라고 확신했죠.
게다가, 우리 회사의 제품 철학은 ‘도구는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도구를 사용하는 존재고, 그렇다면 우리는 컴퓨터라는 도구를 수천만 명에게 제공하고 싶었어요. 그러려면 기존의 IBM식 접근 방식으론 불가능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완전히 다른 길’을 가야 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매킨토시입니다.
PLAYBOY: 하지만 1981년부터 1983년까지, 애플의 시장 점유율은 29%에서 23%로 떨어졌고, 반면 IBM은 3%에서 28%까지 치고 올라왔어요.이 수치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죠?
JOBS: 우린 숫자에 연연하지 않아요. 애플은 언제나 ‘제품’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제품이 모든 걸 말해주니까요. IBM은 ‘서비스, 지원, 메인프레임, 어머니 같은 안정감’에 집중해요. 하지만 진짜 어머니처럼 컴퓨터마다 사람 하나씩 붙일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컴퓨터 안에 어머니를 내장’하려 한 거예요. 그게 바로 매킨토시입니다.
결국 이 시장은 ‘애플 vs IBM’의 싸움이에요. 그건 우리가 원해서가 아니라, 현실이에요. 만약 우리가 큰 실수를 해서 IBM이 승리한다면, 제 생각에 이 산업은 20년간 암흑기로 접어들 거예요. 왜냐하면 IBM이 시장을 장악하면, 혁신이 멈추거든요. 혁신은 IBM이 지배하는 분야에선 거의 일어나지 않아요.
7. 애플의 전략, 일본과의 경쟁, 그리고 기술의 윤리적 책임
PLAYBOY: 그럼 IBM이 시장을 장악하면, 모든 컴퓨터 산업이 정체될 것이라는 말인가요?
JOBS: 실제로 IBM이 지배했던 메인프레임 시장을 보면 그렇습니다. 지난 15년 동안, 그 분야엔 혁신이 거의 없었어요. IBM이 다른 컴퓨터 시장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지배력을 행사할 수만 있다면, 똑같은 일이 벌어질 겁니다.
PLAYBOY: 하지만 지금은 컴퓨터 산업이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지 않나요? 맥이 2년 후에도 여전히 ‘최신’일 수 있을까요?
JOBS: 시장 점유율만 따지면 이 시장은 이미 애플과 IBM의 싸움이에요. 세 번째, 네 번째 기업은 거의 존재하지 않죠. 대부분의 새로운 회사는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 쪽에 집중하고 있어요. 하드웨어 시장에서의 진입 장벽은 이제 너무 높아졌어요.
PLAYBOY: 그럼 더 이상 ‘차고에서 탄생한 억대 회사’ 같은 이야기는 사라진 건가요?
JOBS: 적어도 컴퓨터 하드웨어 분야에선 그렇습니다. 그 말은 곧, 이제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에요. 이 업계에서 혁신을 일으키는 역할은 우리(애플)가 맡아야 하죠. 우리가 충분히 빨리 움직인다면, IBM은 따라오지 못할 거예요.
PLAYBOY: IBM은 결국 IBM 호환 기기를 만드는 회사들을 정리할까요?
JOBS: 아마도 1억~2억 달러 규모의 몇몇 회사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도 생존 자체에 집중해야 할 테니, 거기서 혁신은 기대하기 어렵겠죠. IBM은 결국 그들과는 다른, 지금과는 호환되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표준을 제시할 거라고 생각해요. 왜냐면 지금 쓰는 기술조차 IBM에게 너무 구식이고 제한적이기 때문이에요.
PLAYBOY: 하지만 애플도 비슷하잖아요. Apple II의 소프트웨어는 맥에선 실행되지 않죠.
JOBS: 맞아요. 맥은 완전히 새로운 제품이에요. 우리는 Apple II나 IBM PC 같은 ‘현재 세대 기술’로는 대중을 설득할 수 없다고 판단했어요. 그건 소수의 얼리 어답터에겐 통하죠. 그들은 밤새워 컴퓨터를 익힐 수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하지만 대중에게는 ‘근본적으로 사용하기 쉬운’ 기술이 필요했어요.
그걸 가능케 하려면, 과거와 단절해야 했죠. 그래서 우리는 맥을 완전히 새롭게 만들었어요. 그게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었고, 그래서 정말 신중하게 만들었어요. 그리고 지금은 아주 만족해요. 맥은 향후 10년을 위한 단단한 기반이 되어줄 겁니다.
PLAYBOY: 리사와 매킨토시 이전의 제품 이야기를 다시 해보죠. 당신의 부모님은 당신의 기술적 관심에 어떤 영향을 줬나요?
JOBS: 부모님은 늘 제 관심을 응원해 주셨어요. 아버지는 손재주가 정말 좋으신 분이었어요. 그걸 보면서 저도 점점 전자공학 쪽으로 관심을 갖게 된 거죠.
PLAYBOY: 일본 기업들, 특히 소니, 에이수스, 도시바 같은 기업들이 PC 시장에 진입하려 하고 있어요. 어떻게 경쟁할 생각이신가요?
JOBS: 일본은 참 흥미로운 나라예요. 사람들은 흔히 “일본은 모방한다”고 말하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들은 ‘재발명’하는 겁니다. 어떤 제품이 등장하면, 그걸 정말 철저하게 연구하고 완벽히 이해해요. 그리고 나서, 그것보다 더 정제된 2세대 제품을 내놓죠.
이 전략은 변화가 느린 산업, 예컨대 자동차나 오디오에선 굉장히 잘 먹혀요. 하지만 지금처럼 기술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르면, 그들도 힘들어해요.
재발명 사이클 자체가 몇 년은 걸리기 때문이죠. 그래서 앞으로 4~5년 안에는 일본이 ‘제대로 된 컴퓨터’를 만들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때 미국이 기술적 리더십을 유지하려면, 우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업체’가 되어 있어야 해요.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제조 방식은 충분하지 않아요.
PLAYBOY: 구체적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나요?
JOBS: 맥을 설계할 때, 동시에 ‘그 맥을 제조할 공장’도 함께 설계했어요. 2천만 달러를 들여, 컴퓨터 업계에서 가장 자동화된 공장을 지었죠.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해요. 우리는 그 공장을 2년 만에 전부 감가상각하고, 폐기할 예정입니다. 그 후엔 새로운 기술로 두 번째 공장을 짓고, 또 2년 후엔 세 번째 공장으로 넘어갈 거예요. 이런 식으로 세 번은 반복해야 우리가 일본처럼 빠르게 배우고 발전할 수 있어요.
8. 교육 혁신, 인간-기계 상호작용, 그리고 스티브 잡스의 미래 비전
PLAYBOY: 교육은 당신에게 매우 중요한 이슈인 것 같군요. 컴퓨터가 교육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JOBS: 컴퓨터, 그리고 앞으로 등장할 소프트웨어는 학습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겁니다. 우리는 Apple Education Foundation을 설립했어요. 수백만 달러의 자금과 장비를 학교와 연구자들에게 지원하고 있죠. 맥이 대학에서도 ‘선택의 컴퓨터’가 되길 바랐어요. 초중고에서는 Apple II가 그렇듯이요. 그래서 1000대 이상의 컴퓨터를 도입할 의지가 있는 6개의 대학을 찾고 있었는데, 결국 24개 대학이 참여했어요.
그 중엔 아이비리그 전 대학도 포함됐고요. 우리는 각 대학이 200만 달러 이상을 투자하기를 바랐고, 모두가 동의했어요. 지금 맥은 1년도 안 돼서 ‘대학 컴퓨터 표준’이 됐죠. 맥을 지금 생산하는 만큼 전부 그 24개 대학에 납품해도 모자랄 정도예요. 물론 실제로는 그렇게 못하죠. 하지만 수요는 그만큼 확실해요.
PLAYBOY: 그런데 그 수요를 충족시킬 만큼 교육용 소프트웨어가 충분한가요?
JOBS: 일부는 있고, 나머지는 대학생들이 직접 만들게 될 겁니다. IBM은 이를 막으려 했어요. 무려 400명 규모의 태스크포스를 꾸려서 대응했죠. 하지만 대학들은 똑똑했어요. 하드웨어보다 더 큰 비용이 소프트웨어 개발에 들어갈 거라는 걸 알았고, 그걸 IBM의 구식 기술에 쏟고 싶진 않았던 거예요. 그래서 IBM이 무료로 PC를 줘도 거절하고, 맥을 선택한 거죠. 심지어 어떤 대학은 IBM이 제공한 기부금으로 맥을 구매했어요.
PLAYBOY: 어떤 대학인지 밝힐 수 있나요?
JOBS: 그건 밝히기 어렵겠네요. 괜히 곤란한 일이 생길 수 있으니까요.
PLAYBOY: 과거에 대학생들이 세상을 바꾸려면 정치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당신이 대학생일 때는 어떤 생각이었나요?
JOBS: 제가 아는 똑똑한 친구들은 정치에 가지 않았어요. 그들은 정치에서 무언가를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지지 않았거든요. 그 대신 대부분 비즈니스로 갔어요. 재미있는 점은, 그들이 60년대에 인도를 배낭여행하고 인생의 진리를 찾아다니던 그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PLAYBOY: 결국 돈 때문이었나요?
JOBS: 아니요. 그들은 돈에 관심 없어요. 물론 많은 돈을 벌었지만, 그들의 삶은 거의 바뀌지 않았어요. 그들이 진짜로 원했던 건 ‘직접 무언가를 시도할 수 있는 기회’였어요. 실패하더라도,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요. 그런 기회는 정치에선 거의 주어지지 않아요. 실패할 수조차 없으니까요. 미국이라는 사회는, 위기가 닥치기 전까진 뭔가를 바꾸지 않아요.
그리고 제 생각엔 1990년대 초쯤엔 꽤 큰 위기가 닥칠 거예요. 그때, 우리가 얘기했던 그 친구들 비전도 있고, 실제 경험도 쌓은 사람들 이 정치에 등장할 거예요. 그들은 사람을 알아보는 법도 알고, 실행력도 있고, 리더십도 있을 겁니다.
PLAYBOY: 그런 사람들이 이미 정치에 있어야 하지 않나요?
JOBS: 요즘은 미국의 정치 지도자들 중, 정보 혁명이나 기술의 의미를 이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그런데 지금 이 시대는, 국가의 GDP 절반 이상이 ‘정보 기반 산업’에서 나오고 있어요. 우리는 자원이 아니라 ‘지식과 아이디어’로 먹고 사는 나라예요. 그런데 우리의 정책 결정자들이 그걸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거예요. 그건 매우 위험한 상황이죠.
PLAYBOY: 그럼 군사비를 줄이고, 교육에 더 투자해야 한다는 입장이신가요?
JOBS: 맞습니다. 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무기 투자를 하고 있어요. 그건 국가가 선택한 방향이죠. 그 결과, 우리는 엄청난 재정적자를 떠안게 됐고, 이자율은 오르고, 자본 조달 비용도 치솟고 있어요. 반면 일본은 반대예요. 그들은 세제, 사회 구조 전체가 ‘기술에 투자하기 쉽게’ 짜여 있어요. 그 결과, 우리는 일본에게 반도체 산업조차 위협받고 있어요. 우리가 무기를 만들겠다고 선택한 동안, 일본은 미래 산업을 준비한 거죠. 이런 상황을 미국 사회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기술 강국에서 밀려날 수도 있습니다.
PLAYBOY: 컴퓨터가 그 문제를 도울 수 있을까요?
JOBS: 제가 본 영상 중 하나를 말씀드릴게요.
미국 합참의장에게 보고될 영상이 있었는데, 우연히 우리가 그걸 보게 됐어요. 놀랍게도, 유럽에 배치된 전술 핵무기의 모든 타깃팅 작업이 Apple II 컴퓨터에서 이뤄지고 있었어요. 우리는 군에 납품한 적이 없어요. 그들은 그냥 시중에서 Apple II를 구입했을 뿐이죠. 그걸 알고 기분이 좋지는 않았어요.
다만, “그래도 라디오섁 TRS-80이 아니라서 다행이다”라는 농담을 했죠. 결국 도구라는 건 그 자체로 선악이 없어요. 그걸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사람에게 달린 거예요. 컴퓨터도 마찬가지예요. 좋은 일에도, 나쁜 일에도 쓰일 수 있죠. 그걸 정하는 건 결국 사람이고, ‘지혜’입니다.

9. 지능형 컴퓨터, 자산과 책임, 그리고 스티브 잡스의 철학과 유산
PLAYBOY: 그럼 컴퓨터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보시나요?
JOBS: 지금까지 컴퓨터는 우리에게 ‘종’처럼 일했어요. 스프레드시트를 계산하거나, 우리가 타이핑한 글자를 보여주는 식이었죠.
앞으로는 ‘가이드’나 ‘비서’가 될 겁니다. 컴퓨터가 우리가 원하는 걸 미리 파악하고, 대신 실행한 뒤 보고해 주는 거죠. ‘트리거’ 개념이 도입될 거예요. 조건이 만족되면 컴퓨터가 자동으로 행동합니다.
PLAYBOY: 예를 들어주세요.
JOBS: 예를 들어, 주식 시세를 매일 체크해요. 어떤 주식이 정해진 가격 이상으로 오르면, 컴퓨터가 브로커에게 연락해 자동으로 매도하고, 그 후 사용자에게 결과만 알려주는 거죠. 또는 매달 말이 되면, 매출 목표를 20% 초과 달성한 영업사원들을 찾아서 자동으로 축하 메시지를 작성해 전송하고, 누구에게 보냈는지도 요약해주는 겁니다. 이런 지능적 행위는 아마 3년 안에 현실이 될 거예요. 다음 세대의 도약은 바로 이겁니다.
PLAYBOY: 그 모든 기능이 현재 하드웨어에서도 가능한가요?
JOBS: ‘모든’ 기능이 될 거라고는 말 못 하겠어요. 하지만 매킨토시는 그런 비전을 염두에 두고 설계됐어요.
PLAYBOY: 애플은 항상 앞서 있는 걸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기존 대기업들이 후발주자로 따라오는 건 불공평하다고 느끼지 않나요?
JOBS: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그래서 저는 ‘죽음’이 삶에서 가장 위대한 발명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죽음은 ‘오래된 모델’을 시스템에서 제거해 주니까요. 애플이 맞이하게 될 도전 중 하나는 이런 겁니다: 앞으로 누군가가 새로운 무언가를 들고 왔을 때, 우리는 그것을 환영할 수 있을까? 기존의 생각을 내려놓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전 애플이 그런 회사가 되리라 믿어요. 우리는 그걸 인식하고 있고, 그것을 우선순위로 두고 있으니까요.
PLAYBOY: 이렇게 빠르게 성공하면서 “이게 정말 현실인가?” 하고 놀란 적은 없었나요?
JOBS: 예전엔 “연간 100만 대의 컴퓨터를 팔고 싶다”고 상상하긴 했어요. 하지만 현실이 되니까 느낌이 전혀 다르더군요. “세상에, 진짜 이게 이뤄지고 있잖아!”라는 느낌. 다만 이건 ‘단기간의 성공’처럼 느껴지지 않아요. 벌써 10년째 이 일을 하고 있어요. 전에는 6개월을 같은 일에 집중하는 것도 길다고 생각했는데요. 애플에서의 1년은 ‘한 생애’나 다름없었어요. 그만큼 매년 격렬하고 밀도 높았죠. 지금까지 열 번의 인생을 산 기분입니다.
PLAYBOY: 앞으로의 인생에서 어떤 계획이 있으신가요?
JOBS: 인도 속담이 하나 있어요. “인생의 첫 30년은 네가 습관을 만들고, 나머지 30년은 그 습관이 너를 만든다.” 전 이제 곧 30살이 되죠. 그래서 이 말이 요즘 계속 머릿속에 맴돌아요. 앞으로 뭘 할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애플과의 인연은 계속될 겁니다. 어쩌면 몇 년은 떨어져 있을 수도 있지만, 결국 다시 돌아올 거예요.
PLAYBOY: 당신은 아직도 배우고 있는 중이라는 거군요?
JOBS: 맞아요. 전 여전히 ‘훈련소’에 있는 학생일 뿐이에요. 누가 제 생각을 읽고 있다면, 그걸 기억해줬으면 좋겠어요.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마세요. 예술가처럼 창조적인 삶을 살려면, 과거를 잊고 앞으로 나아갈 줄 알아야 해요. 우리가 ‘누구인지’라는 건 결국 습관과 선호의 조합일 뿐이죠. 그 중심에는 우리의 ‘가치관’이 있고, 그 가치를 반영한 결정과 행동들이 우리의 존재를 만듭니다.
인터뷰나 언론 노출이 어려운 이유는, 내가 변하고 성장하고 싶은데, 세상은 내가 어떤 모습이기를 원하니까요. 그래서 예술가들이 “미안하지만, 난 좀 숨어야겠어” 하고 사라지는 거예요. 그리고 언젠가, 다시 돌아오죠.
조금 다른 모습으로요.
인터뷰 종료
KMUG 애플에 대한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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